Sunday, June 10, 2018

Life Reborn

Life Reborn

부활이란 생명이 다시 살아남을 말한다.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생명이 살아남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생명이 다시 살아 남을 뜻한다.
<인간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되는 것은
<예수의 인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이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이
되셨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이, 성령의 삶을 살다가, 억울하게
사형을 당해 죽었으나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신 증거가 됨으로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인간의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이다.
(1)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2) "성령의 삶을 산다"는 것은,
(3)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신(信)이란 무엇인가?

신(信)무엇인가?

신(信)이란 인간이 증거하는 언어, 풀이, 깨달음, 증거, 행위 전체를 통하는
믿음을 말한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믿음과,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믿음까지도
함께 포함된다.   신(信)은 마음에 있는 것이며 상대적 대립의 세계가 스스로 붕괴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믿음이다.  ( 마음이 中道를 열망하는 것이 信이다. )

1. 상대적 대립의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의 분리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2. 분리하여 분별하지 않으면 본질에 가깝다.
    신(信)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떠나면 바른 견해의 믿음을
    가진다.  무엇이든지 간별하면 믿음에 상응치 못한다.  그러므로 믿음을 증거하고자
    하면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떠나야 한다.
 
3. 차별하여 분리하면 대립의 세계가 전개된다.

4. 본질을 보고 싶으면 상대적 대립을 떠나라.

5. 몸과 마음의 병은 차별과 대립을 일삼는데서 발생한다.

6. 아무리 심신이 편하다 해도, 상대적 대립의 세계에 안주한 자는
     재앙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다.

7. 믿음은 원만하여 부족함이 없다.

8. 믿는 이유를 밝히고 싶으면, 상대적 대립의 세계에서 구하지 마라.

9. 보이는 세계에 머물지도 말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머물지도 마라.

10. 하나가 원래 평등하게 되면, 나머지도 평등하게 된다.

11. 움직이면 그치게 되고, 그치면 움직이게 되니, 움직임과 그침은
      본래 같은데서 부터 발생한다.

12. 선택하면 양변을 모두 모르게 된다.

13. 양변을 모르게 되면 한 가지도 알 수 없다.

14. 유(有)를 버리면, 유(有)에 갇히고,
      무(無)를 따르면, 무(無)를 무시하게 된다.

15. 말과 생각이 많으면, 실제에 상응치 못한다.

16. 말과 생각이 끊어지면 처할 곳도 없고, 통할 것도 없다.
      (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

17.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면 길을 잃는다.

18. 순간에 돌이켜 보면
      공한 가운데서 일어 설 수 있다.

19. 공한 가운데 전변하는 것은 망견이다.

20. 참됨을 구해 쓰려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쉬어라.

21.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좇아가 찾지 말라.

22. 잠간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본심이 어지러워진다.

23. 둘은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있는 것이니,
      하나 마저도 지키려 하지 말라.

24. 한 마음이 생하지 아니하면
      만 법에 허물이 없다. 양변을 여윈 중도에서 성립된다.

25. 생각이 일지 않으면 허물도 없고 법도 없다.
      허물도 변(邊)이고, 법도 변이고, 마음이라 해도 변(邊)이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중도(中道)가 될 수 밖에 없다.

26. 主觀은 客觀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흔적이 없어진다.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것이 남아 있으면, 모두가 병통이다.



여러가지 질문사안에 대한 연구

말고기는 왜 먹지를 않는가?
왜 행정구역을 세분화하여 통치하는가?
찬성과 반대의 논리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시험의 본질은 무엇인가?

법(法)의 기초

법의 제정은 국민이 선택한 사람들이 만든다.
그리고 법으로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국민이다.
법의 다스림을 받는 다는 것은 그 법을 위반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법을 위반하는 자들 때문에 그 법이 만들어진 것임으로 해당되는 법을 위반하는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은 그런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 근본을 알고 보면,
입법자들이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범법자들이 그런 법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범법자들이 그들의 해당법안을 제정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함이 마땅하다.  적어도 범법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법안의
기초와 틀을 잡아야 할 것이다.  Grace & Mercy are born in the law.

진리는 선택이 아니다


< 진리는 선택이 아니다 >

진리를 알고 싶다면 우선 아무런 선택을 하지마라.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좌우간에 어떤 하나를 선택했을 경우에는 선택한 그 길이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지 진리가 무엇인지 추구할 수 있다.
싫고 좋음과, 손해와 이익, 거룩함과 속됨을 가려 어떤 하나를 선택하여 그 길이
옳다고 믿고 진리를 추구한다면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를 관찰할 수 없게 된다.
진리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를 관찰할 수 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버리거나 취하는 길을 생각하여 어떤 한 길을 선택했을
때에는 동(東)과 서(西)가 서로 벌어짐 같이 진리의 길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하여 바른 견해를 갖는 것은 어려운 것 같지만 쉬운 일이요,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선택하는
마음을 가지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동서와 남북이 스스로 서로 만나 진리의 길을
보여줌과 같을 것이다.  모든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편견에서 스스로 벗어나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를 관찰할 때에 진리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를 관찰하는 길에는 세가지 질병이 있다.
하나는 몸의 병이요, 둘째는 마음의 병이요, 셋째는 말의 병이다.
몸은 형체가 있으니 눈으로 볼 수 있어 그 모양세를 알 수 있고, 거기에 있는 병세를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의 병은 형체가 없으나 몸의 병으로 인하여 생긴 병이니
그 원인과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말의 병은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이 언어로
연계되어 작용함으로서  말의 병이 되는 것이니 몸과 마음과 말을 세밀히 관찰하여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를 스스로 터득해야 할 것이다.  이 셋은 하나이면서 셋으로
작용하는 것이요, 셋이면서 하나로 작용하는 현상이 있으니 이런 현상을 주목하여
면밀히 관찰함으로서 진리에 대한 묘하고도 평등한 견해를 스스로 발견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의 길을 자유롭게 걸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